전 꿈이 아주 큰 편이었는데요.
보통은 20대 중반을 넘기면 꿈이 줄어든다잖아요?
전 만화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점점 더 커져 갔어요.
근데 지금의 꿈은 꽤 작아졌어요.
하지만 전보다 행복해요.
전엔 아무래도 누군가가 응원해 주는 목소리 덕에 제 의지를 이어 나갈 수 있었거든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면 더 좋은 사람이 할 행동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이젠 딱 제가 하는 만큼의 저를 모두가 평가할 수 있도록 거품이 사라져서 좋아요.
전 꼬마 때부터 늘 그렇게 살았나 봐요.
국민학교 1학년 때 받은 선행상이 남에게 더 칭찬 받고 싶어 하는 맘을 만들었어요.
진짜로 공익이나 남을 위하는 맘으로 하는 행동보다 칭찬 받기 쉬운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근데 1년 전의 그때 이후로 저도 허영이 사라졌어요.
제 이미지는 굳었잖아요?
이제는 뭘 해도 그대로인 걸 아니까 오히려 더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전엔 늘 의심스러웠어요.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니면 하는 걸 남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 말예요.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지?'라고 하시기도 하고요.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은 거지?'라고 하시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안하는 게 더 편하겠다' 싶은 상황이 돼서요.
솔직히 아까도 말했듯이 뭘 하건 이미지가 바뀌겠어요?
근데 그걸 스스로 알게 된 뒤에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에요.
물론 예전이나 지금이나 목표는 '보여 주는' 거예요.
그땐 '저런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란 선전을 원했고요.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없는 녀석도 하니까 나도 해야지.'란 반응이 나오길 원해요.
지금은 말예요.
작년 크리스마스에 말예요.
200만 원을 아무의 도움도 없이 내 힘으로만 모으겠다고 이 게시판에서 맹세했잖아요?
그 돈으로 80명의 아이에게 진짜로 산타 클로스가 돼 주겠다고 맹세한 걸 이루는 게 꿈이에요.
사실은 벌써 4개월 반이나 지났는데 모은 돈이라곤 겨우 40만 원이에요.
그나마 이것도 24일에 초콜릿을 사서 보내 주고 나면 0원으로 떨어지거든요?
벌긴 더 버는데 주변의 문제를 신경쓰고 가족들과 나누고 하니까 남은 게 이게 다더라고요.
맥도날드에서 틈틈이 쓴 돈만 모아도 꽤 됐을 텐데.
몸도 더 건강했을 테고.
제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렸단 생각에 부끄럽고 좀 그래요.
더 분발할게요.
제가 올해에 꿈을 이루고 그걸 보면 내년엔 저보다 더 나은 꿈을 이루실 수 있겠죠?
전 200만 원 밖에 못해요.
근데 2,000만 원으로 꼬마들에게 선물을 사 주시는 분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절 보고 그렇게 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게 제가 생각한 가장 큰 꿈에 도달하는 거예요.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으면 그 일, 쉽게 말해 역사가 사라지는 덴 수만 년이 걸려도 끝이 없어요.
그 일이 사실임은 언제라도 변함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반성엔 그 당사자의 평생이 걸려요.
또 그 대가도 역시 반성하는 내내 지속되고요.
업을 가진 한 사람이 새롭게 바뀌기 위해선 그의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온 세월만큼이 걸려요.
제겐 작년까지니까 26년이겠죠?
하지만 깨달음과 변화의 의지를 갖는 건 찰나의 순간이에요.
그 찰나가 1년 전에 제게 찾아왔어요.
그 찰나를 거치고 나니까 위에서 적은 것과 같은 많은 숙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늘 무거운 맘을 안고 살아가요.
근데 좋아요.
그 찰나가 늦었다면 전 더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방명록엔 때때로 그때를 잊겠단 분들이 계셔요.
그리고 때때로 이제부터 저도 잊으란 분들이 계셔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요.
아니면 제가 많이 바뀌었다고요.
하지만 전 저 위에 적은 것만큼의 시간을 보내기엔 아직까지 수십 년이 더 남아서 그럴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치 않는 사실이라서 그럴 수가 없어요.
과거는 사라지지 않아요.
고칠 수도 없어요.
누군가 과거를 사라지게 하거나 고친다면?
그게 저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아주 무서웠어요.
그러면 세상엔 현재의 잘못을 언젠가 사라질 거라고 쉽게 볼 사람이 생길 테니까요.
그러면 안좋은 선례를 남기는 거잖아요?
사실은 제가 남기지 않아도 이미 그런 선례는 많지만요.
물론 솔직히 한 5년만 전으로 돌려 준다면 다시 살 기회를 준다면 절대로 안 그럴 거예요.
근데 이미 그런 과거를 만든 이상 할 일이라곤 미래에 그 짐을 다 지는 게 할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가 잊혀지지 않는 만큼요.
그때의 과오의 정도만큼요.
그만큼 미래를 개선할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앞으로도 쭉 섹센티로 살 거예요.
물론 그 이름처럼 살진 않고요.
그냥 이게 일종의 낙인이라고 생각해요.
이 이름이 보인다면 언제까지나 잊지 않잖아요?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럼 더 잘해야 하고 그러려고 또 노력하고.
언제나 9회 말 투 아웃 풀 카운트의 상태로 사는 거잖아요?
작은 행동도 한번 더 생각하고 다시 실수하지 않으리라 또 맹세하고.
제가 지금에 와서 겨우 전과 달리 한두 해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다시 돌아간다면?
그건 불합리해요.
그리고 그런 세상에선 별로 살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저 이름이 불릴 때마다 온 몸이 떨리고 소름이 돋아요.
그럴 때마다 더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사람으로 더 바르게 더 바뀐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전 그게 좋아요.
그래도 그냥 누군가 '에센티는 과거에 옳지 않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사람들에게서 그때의 일이 모두 잊혀지면 좋겠단 생각을 하다가도 그건 정말로 안될 일 같아서요.
근데 예를 들자면 뭐가 좋을까?
음, 언젠가 손자, 손녀가 묻는다면요.
가장 부끄러운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얘길 다 해 줄 거예요.
그게 적어도 사실을 가리는 것보다 맘이 편하고 더 좋은 방법 같아요.
난 그때처럼 살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사실만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난다고 잘못이 사라지면 정말로 더 심한 죄책감이 들어요.
그 잘못을 인정하고도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만큼 잘하고 싶어요.
그냥 내가 바뀐다고 내 과거를 무작정 다 잊지 말고요.
제가 죽으면 '이 사람은 죽기 전까지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았어.'란 말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하지만 그때의 그 일은 아무래도 정말로 나쁜 짓이었어!'란 말도 듣고 싶어요.
모든 건 전화 통화에서 비롯된 일이라 가급적이면 말은 안하려고 해요.
그 이후로 많이 고쳤지만 그래도 아직도 제 입을 못 믿어서요.
근데 오늘따라 생각이 많은데 좀 쓸쓸해서 여기다가 얘기를 털어 놨어요.
뜬금없는 얘기였죠?
긴 말을 오랜만에 하니까 말하는 게 영 쉽지 않네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고.
24일에 보육원에 다녀오면 또 편지를 남길게요.
`10년 5월 20일 섹센티가